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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광주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시 꺼내보는 5·18의 진실

율빈아 2025. 3. 26.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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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의 시간은 멈추었다

인삿말
이 글을 쓰기까지 마음이 참 무겁더라구요.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 시간만큼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5월이 오면 괜히 마음 한 켠이 뻐근해지곤 하죠.
뉴스에 나오는 영상, 사진 몇 장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무게가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말 많고 탈도 많았던 1980년의 광주를 조금 더 차분히 들여다보려 해요.
특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정리해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한 도시의 ‘삶’으로 느껴지게끔 써보려구요.

📍 이건 누군가의 고통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용기였고요.
당신도, 나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이니까요.


🌿1980년 5월, 그 해 봄은 이상했어요.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졌고, 사람들은 점점 숨을 죽이게 되었고...
그러다 결국 광주에서, 도저히 침묵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하지만 그 목소리는 곧 총성에 묻혀버렸고, 광주의 거리는 피로 물들었습니다.
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엔 5·18 민주화운동의 발생 배경부터 전개, 그리고 남겨진 것들까지
하나씩 차근히 짚어보려 해요.

단순히 기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왜 그랬을까?",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 부분을 함께 느껴보고 싶어서요.

1. 그날을 부른 시계바늘, 왜 1980년이었을까?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암살당하면서
정권이 공중분해 상태가 됐쥬...
혼란 속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전두환’이었슴미다.
군 내부에서 권력을 틀어쥔 그는
1980년 5월 17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전면 탄압을 시작했지요.

근데 광주는 좀 달랐어요.
그냥 고개 숙이지 않았거든요.
이게 바로 5·18의 시계바늘이 돌아가기 시작한 순간이었슴다.


2. "우리는 민주화를 원했을 뿐인데요!"

5월 18일, 전남대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됐고,
곧이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시민군이 결성되기 전까지
경찰과의 충돌이 격화되었고요.

그냥 시위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외침이었어요.
“이대로는 못 산다!”
근데… 갑자기 계엄군이 투입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폭력적으로 바뀌었죠.

몽둥이, 곤봉, 총검술…
진짜, 믿기 어려운 일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거 있죠ㅠㅠ


3. 광주는 외톨이가 아니었슴다…

이 상황이 전국적으로 중계되거나 알려졌으면
분명 뭔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는데요,
문제는 언론 통제가 너무 심했다는 거!

그냥 광주만 이상한 도시처럼,
‘폭도들의 반란’으로 프레임을 씌우기 바빴쥬.

그래서 당시 많은 국민들이
정말로 광주가 ‘무서운 곳’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4. 시민군의 탄생과, 열흘 간의 시간

광주 사람들은 자기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로 ‘시민군’의 시작이었쥬.

이들이 벌인 건 단순한 폭동이 아니었슴다.
보급을 조직하고, 병원을 운영하고, 심지어는 방송국까지 장악해서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려고 애썼어요.

그 사이에도 계엄군의 진압은 계속됐고요…
5월 27일 새벽, 결국 전투 차량과 병력들이 전면 투입되면서
광주의 마지막 저항은 막을 내리게 됐슴다.


5. 총은 사라졌지만, 상처는 남았슴다

5·18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쥬.
수백 명의 사망자, 수많은 부상자들,
그리고 ‘실종’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사람들까지…

이걸 어떻게 복구해야 하나,
누가 책임져야 하나…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광주는 끝까지 기억을 놓지 않았다는 거예요.
기억은 기록이 되었고,
기록은 진실이 되었슴다.


6.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5·18 민주화운동은
그냥 과거의 한 사건으로 덮어두기엔 너무 크고 깊은 상처예요.
‘진상규명’이 아직도 진행 중이고요,
가해자들의 명확한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았쥬.

하지만 매년 5월,
광주에 모이는 사람들 덕분에
이 기억은 흐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날의 외침,
“우리는 민주화를 원했다”는 그 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거,
잊지 말아야겠슴다.


🙋‍♀️ 아직도 많이 궁금해하시는 것들

"5·18 진상조사위는 지금 뭐 하고 있나요?"
→ 현재도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 중이며, 특히 ‘헬기사격’, ‘암매장 의혹’ 등에 대한 조사가 계속되고 있음다.
하지만 여러 이해관계와 시간의 벽에 부딪혀 속도는 좀 느린 편이에요ㅠㅠ

"당시 군인들도 피해자 아니었나요?"
→ 맞아요. 계엄군 중 일부도 명령에 의한 행동이었고, 그 안에서 갈등을 겪은 이들도 있었쥬.
광주 시민과 계엄군 모두, 그 날의 ‘피해자’였다는 시선도 필요함다.

"이거 왜 아직도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나요?"
→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려는 시도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더 안타까운 일이쥬…


🌱 아무도 광주를 부르지 않았지만, 광주는 응답했쥬

5월 18일은 그냥 어떤 기념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 현대사의 균열이 드러난 날이라고 생각해요.

광주는 외쳤고,
그 외침이 지금의 자유와 권리에까지 이어졌다면
그걸 기억하는 우리가 있어야겠죠?

단순히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걸 넘어서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슴다.


✍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혹시 5·18에 대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내용이 있었나요?
혹은, 이 글을 통해 새롭게 느낀 점이나 떠오른 생각들이 있으셨다면
댓글로 조심스레 나눠주셔도 참 좋겠어요…!

이런 주제는 누군가의 목소리만으론 부족하니까요.
다 같이 기억하고, 이야기 나누는 게
진짜 기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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